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문단 편집) === 중국 내의 반응 === [[친중파(홍콩)|친중파]]인 [[렁춘잉]]이 행정장관으로 있는 홍콩 정부는 당연히 이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강경 진압을 천명하였고, 진압에 나선 경찰은 최루탄 등을 사용하여 진압에 나섰다. 또한 10대 청소년을 포함하여 시위대 75명을 연행하였으나, 이게 시위대를 향한 광범위한 지지를 부르는 역풍을 불러오자 강경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뒤에서 친중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루머가 횡행하고 있다. 경찰이 친중 단체의 홍콩 시위대 습격을 무시한다거나 하는 루머도 있었다. --우린 간섭 안 할게-- --겉으론-- 다만 모두 확실하지는 않다. [[중국공산당]]은 결론적으로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홍콩 내정은 홍콩인이 알아서 하라"는 입장이었고, 홍콩이 분리독립만 선언하지 않으면 무력개입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내심이야 친중국 세력을 지지했겠지만, 어쨌든 사태 내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시위대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으므로,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華春瑩)을 통해 '법에 의한 처리'를 주문하였다. 10월 1일엔 [[시진핑]]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1039575|'일국양제'를 고수한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는 사실상 현재 중국 공산당의 직선제안을 고수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또 여론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 SNS 서비스를 차단하고, [[중국 대륙]] 내 인터넷과 언론에서 우산 혁명에 대한 내용을 검열하는 한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1&aid=0002578867|외신의 홍콩 관련 보도를 차단]]하는 등 언론 통제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위 한 달이 지나자 시진핑이 직접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958676&ref=A|반란이라는 단어까지 언급]]하며 강경 대응할 태세임을 예고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홍콩이 전세계적으로 보는 눈이 많다보니 아무리 자국의 특별행정구이고 법적 근거가 있다고 해도 국제사회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우산 시위는 티베트나 위구르와는 달리 독립 문제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자치를 보장한 홍콩의 내정이기 때문에 중국측이 개입할 명분도 없고, 더군다나 여기에 개입했다가 유혈사태라도 나면 서방측에게 중국 체제가 민주화를 탄압한다는 좋은 선전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독립운동 세력이 일부 개입하기는 했지만 주류 세력은 아니었고 더군다나 홍콩의 민주주의는 중국 공산당이 [[중영공동선언]]으로 50년간 보장을 약속했기 때문에, 더더욱 개입의 명분은 없는 상태였다. [[천안문 학살]]의 잔인한 유혈진압 이후 현재까지도 서방측의 인권공세에 별말 못하는 것을 보면 섣부른 유혈사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격을 추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천안문 당시에도 그랬듯, 중국이 유혈사태를 일으키더라도 서방측에서 중국에 가하는 제재는 실질적으로 없거나 유명무실할 가능성이 높다. 하려면 못할 것은 없다는 것.] '''더 큰 이유는 시위의 최고조기에서도 학생을 제외하면 이 시위에 대해 홍콩 중산층의 반응이 싸늘했기 때문에''' 실패는 예상되었고, 중국 공산당이 섣불리 개입해서 민심을 자극하기 보다는 그대로 놔두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시위가 끝난 후 공산당의 입김이 들어간 선거제에 대한 지지율이 도리어 더 높아졌다. [[http://kocham.hk/xe/index.php?document_srl=105455&mid=hk_news&listStyle=viewer&page=13|홍콩 교민신문]] 다만 천안문 사태 당시보다 중국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과 미-중 간 상호교류가 넘사벽으로 커진 것, 미국의 대외 영향력과 경제 상황이 (해외에 대한 적극 개입을 또 시도하기에) 다소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미국은 어지간한 대참사가 벌어지지 않는 한 웬만하면 방관할 가능성도 있다. ([[ISIL]]의 준동에도 이전 [[테러와의 전쟁]] 때와 같은 개입은 하지 않는 미국이다!) 당장 천안문 사태 직후의 경제제재도 잠시 하는 척하다가 그냥 유야무야되었다. 결국 홍콩에서 섣불리 일을 벌였다간 가장 손해보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중국 공산당이 너무나 잘 알기에 불상사는 없었다. 티베트나 위구르와 같은 분리독립세력에 대해서는 엄단을 부르짖는 시진핑이 홍콩에 대해선 말로만 강경대응을 논했을뿐이다. 물론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티벳이나 위구르와는 달리 중국에서 독립하자는게 아니기 때문에 중국이 개입할 명분도 없었다. 실제로 홍콩의 시위는 일부 지역, 일부 학생 계층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굳이 무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홍콩 시위 자체보다는 이 운동이 자국에 옮겨붙지 않을까 더 염려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시위에 대한 보도는 중국 매체에서 철저히 통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